이은실은 전통적인 한국화 기법으로 농밀한 성적 욕망의 세계를 표현한다. 이 전시의 한 작품 ‘Scene of Desire’처럼 욕망이라는 키워드가 담겨있다. 동양의 오래된 화첩들에도 현대의 포르노그래피 못지않은 적나라한 이미지들이 있다. 그러나 끈적한 욕망에 의해 눅눅해진 장면들로부터 은유적 도상들이 어렴풋이 드러나는 이은실의 작품들은 좀 더 은근하게, 그래서 더욱 에로틱한 분위기에 잠겨있다. 장지에 수묵채색으로 그려진 달밤의 기이한 풍경들은 어둡고 축축한 분위기이다. 그 가운데 도드라진 것은 황금빛 털을 가진 신화적 실체다. 전시된 작품들에는 자연의 영역이라고 간주되는 원초적 욕구부터 문명사회의 구조적인 욕망에까지 아우른다. 동물과 인간, 또는 동물적 인간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생물학적 욕구와 상징적 욕망의 사이의 연결과 단절을 말한다. 우선 호랑이들의 애정행각은 야성적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 사랑을 철학적으로 탐구한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사랑의 역사’에서 ‘난폭하고 거칠고 격렬한 사랑’을 토로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내 마음의 시간은 야성적이고 잔인해서’... ‘굶주린 호랑이나 포효하는 바다보다도, 더 포악하고 더 냉혹하다’—를 인용한 바 있다. 그러나 고전적 사랑 이야기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결말은 사랑과 죽음의 관계 또한 생각하게 한다. 번식의 운명을 벗어난 인간의 성은 이미 생물학의 영역을 넘어서 있다. 성을 포함한 자연력은 문명의 조율을 받게 된다. 생물학적 욕구든 사회적 욕망이든, 타자와 공존하는 개체가 바라는 두 가지 대조적 항을 연결하는 조형적 요소는 어두운 바탕에서 빛나는 선이다. 녹조류가 가득 낀 듯한 밀도 높고 불투명한 배경을 가르는 빛나는 직선들은 가늘지만 밤에 빛나는 네온사인처럼 그 존재감이 있다. 선은 투명한 면이 되어 원초적 실재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틀 지으며 서사를 이끌어나간다. 야수의 황금빛 털들을 표현하는 선들은 좀 더 분명한 방향성을 갖추면서 건축이나 기계의 일부를 이룬다. 자연의 원초적 욕구는 문명의 구조화된 힘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문명의 욕망은 자연적 욕구를 에너지로 삼아서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 힘을 증폭시킨다. 작품 ‘오랜 집’이나 ‘깊은 밤→방’ 시리즈는 동물의 얼룩무늬들로 가득한 건축적 구조와 그러한 좌표들이 계층화된 모습이다.
관객의 시선을 포함하여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욕망하는 눈은 미세한 좌표축을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가닿는 장소가 어디일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미지의 지점을 향한 접근 또는 후퇴의 과정만이 분명할 따름이다. 작품 ‘BIONIC PENIS, PRESS THE BUTTON!’에서 작가는 페니스에 버튼을 달아서 생물학적 기관을 상징계의 차원으로 변화시킨다. 레비 스트로스로부터 라깡에 이르기까지, 상징은 사회적 제도의 영역임이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원초적 실재는 상징계에 의해 완전히 포획될 수 없다. 작가는 꽤 큰 화면인데도 화면에 포착된 장면을 잘려진 틀처럼 표현했다. 맹수들은 화면밖에 더 많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이다. 한편 자연력 또는 생식력은 예술과 무관할 수 없다. 단 그것은 조절되어야 할 원초적 에너지다. 꼬리 또한 털 못지않은 동물적 특징인데, 이은실의 작품에서 야수의 꼬리는 붓이자 남근을 닮았다. 꼬리가 캔버스 틀을 붙잡고 있는 듯한 작품 ‘겨우’는 작업에 있어 에너지와 형식의 관계를 나타낸다. 건축적 구조 안팎에 배열된 기암괴석이나 풀숲, 구름 등은 성적 에너지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상징으로 다가온다. 전시부제인 ‘PRESS THE BUTTON!’은 자연적 에너지를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표현한다. 부질없이 생겨났다가 흩어지는 에너지는 집중 및 축적의 회로로 흘러들어간다. 그것이 권력을 확대 재생산할 것이다. 그러나 ‘정관수술 실패]같은 작품도 있는 것을 보면, 상징적 시스템은 완벽하지 않다. 정밀한 기계의 설계도처럼 보이는 구조에는 금지된 선을 통과할 수 있는 구멍이 뚫려있다. 동물과 인간 사이에는 금기의 유무라는 경계가 있다. 털은 인간의 동물적 유산으로, 인간의 상상계에서 힘과 성적 매력의 요소로 남아있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포함하여 인간의 털을 깍거나 가리는 행위에는 무력화를 상징한다. 한편 이러한 동물적 요소와 관계된 유혹은 죽음이라는 결말을 깔고 있다. 인간사회를 이루는 구조적 힘은 금기사항을 통해 욕망과 죽음의 연결망을 단절하고자 했지만, 금기는 위반되곤 한다. 이은실의 작품이 불온해 보이는 것은 인간사회가 이미 극복했다고 믿은 원초적 에너지가 금기의 선을 무너뜨리려고 넘실대기 때문이다.